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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과장이 아닙니다.이말씀의 내용이 복음의 일꾼임을 자처하는 우리의 실재와 판이하게 다른 이유는
바울이 표현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세상의 더러운것'과'찌꺼기'가 되지않으려고 피하며
몸을사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것"은 거룩함의 증거가 아니고,"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입은것"의 증거입니다. 베드로는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했습니다(벧전 4: 12).우리가 시험당하는것을 이상히 여기고있는 이유는 겁을 먹고있기때문입니다.
오욕의 수렁을피해 그 밖에서만 머물려하며"나는 머리를 숙일수없어,나는 굽히고 싶지않아"라고 말하는것은 자신의
관심과 욕망에만 마음을 쏟기 때문입니다. 사실원한다면 꼭힘든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까스로 구원받는길을 택할수도 있습니다.당신은 하나님이'복음을 위해 택정함을입은'사람으로 기대하시지 않도록
그 부르심을 거부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당신은 이렇게 말할수 있습니다."복음이 선포되기만 한다면
나는 세상의 더러운것으로 취급받아도 괜찮아!'에수그리스도의 참된 종은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를 위해서라면
순교도 기꺼이 감당합니다. 도덕적인 사람은 모욕을 당하거나,부도덕한일을보거나,배신을 당하거나,정직하지못한일을
보면 거부하며 돌아서게 되고,절망에 빠지며,상처를 준사람에게 마음을 닫고맘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속의 진리가
신비한 이유는 제 아무리 악하고 역겨운 사람도 그분의 사랑의 끝에 다다를수는 없다는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택하신것은 자신을 얼마나 훌륭하게만드실수 있는지 보여 주시려함이 아니라"그아들을 내[바울]속에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